향수를 고르다 보면 이런 상황을 자주 만납니다. 원작이 있고, 이름 뒤에 단어 하나가 더 붙은 버전이 또 있습니다.
Artisan
Artisan Pure
둘 다 살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면 하나만 사도 될까요. 둘 다 쓰면서 확인한 답을 적습니다.
플랭커가 뭔가
원작이 성공하면 브랜드가 내놓는 파생 제품을 **플랭커(flanker)**라고 부릅니다.
흔한 오해가 **“플랭커는 원작을 진하게 만든 버전”**이라는 것인데, 대부분 사실이 아닙니다. 조합 자체를 다시 짠 별개의 향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두 제품이 딱 그 사례입니다. → 향수 이름 읽는 법
기본 정보
| 아티산 | 아티산 퓨어 | |
|---|---|---|
| 출시 | 2009 | 2017 |
| 조향사 | 로드리고 플로레스루 | 로드리고 플로레스루 (동일) |
| 계열 | 시트러스 아로마틱 | 시트러스 |
| 부향률 | EDT | EDT |
| 용량 | 125ml | 125ml |
같은 조향사가 8년 뒤에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같은 주제를 다시 풀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라벨을 안 봐도 구분됩니다
두 병을 나란히 놓으면 라탄 색이 다릅니다.
색만 다른 게 아니라 엮은 방식도 다릅니다. 원작은 촘촘하게 짜여 있고, 퓨어는 간격이 넓고 거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중고 거래나 선물로 받았을 때 라벨이 지워져 있어도 구분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두 병 다 125ml라 크기로는 구별이 안 되거든요.
노트 구성 비교
| 단계 | 아티산 | 아티산 퓨어 |
|---|---|---|
| 탑 | 클레멘타인, 탠저린, 마조람, 타임 | 클레멘타인, 레몬, 만다린, 베르가못, 타임, 마조람 |
| 미들 | 오렌지블라썸, 진저, 라벤더, 자스민 | 쁘띠그레인, 진저 |
| 베이스 | 머스크, 우디, 앰버 | 우디, 머스크, 앰버, 오리스 루트 |
구성만 보면 방향이 분명합니다.
퓨어는 시트러스를 늘리고 → 꽃을 덜어냈습니다
원작의 라벤더·자스민·오렌지블라썸이 빠지고, 시트러스가 2종에서 4종으로 늘었습니다. 이름의 Pure는 **“더 진하다”가 아니라 “더 단순하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노트표와 실제 체감은 다를 수 있습니다. 아래는 직접 써본 기록입니다.
직접 비교
| 항목 | 아티산 | 아티산 퓨어 |
|---|---|---|
| 첫인상 | 시트러스 + 허브 | 시트러스가 더 강함 |
| 잔향 | 우디 느낌 | 깔끔하게 옅어짐 |
| 성격 | 복잡하고 무게가 있음 | 단순하고 깨끗함 |
| 지속력 | 조말론보다 김 | 조말론보다 김 |
| 확산력 | 조말론보다 셈 | 조말론보다 셈 |
실제로 얼마나 다른가
노트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실제 체감과 일치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드문 일입니다.
퓨어는 시트러스가 확실히 더 강합니다. 시트러스가 2종에서 4종으로 늘어난 게 그대로 느껴집니다. 반대로 원작은 잔향에서 나무 느낌이 올라옵니다. 베이스 구성은 비슷한데, 원작 쪽이 미들의 라벤더·자스민을 거쳐 내려오면서 더 두껍게 느껴집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티산 시트러스로 시작해 → 우디로 끝남
아티산 퓨어 시트러스로 시작해 → 시트러스로 끝남
“같은 향수의 다른 버전”보다는 “방향이 다른 두 향수”에 가깝습니다. 뼈대는 공유하는데 끝나는 지점이 다릅니다.
지속력과 확산력은
둘 다 비슷합니다. 그리고 둘 다 조말론 콜로뉴(약 6시간)보다 확실히 길고 셉니다.
같은 EDT 표기라도 브랜드에 따라 체감이 이렇게 다릅니다. 부향률 표기를 절대적으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 향수 부향률 완전정리
둘 다 살 필요가 있나
하나면 충분합니다. 끝나는 지점이 다르니, 어느 쪽 마무리를 좋아하는지로 고르면 됩니다.
우디 잔향이 좋다 → 아티산
깔끔한 시트러스가 좋다 → 아티산 퓨어
사계절 한 병이 필요하다 → 아티산 퓨어
둘 다 가질 가치는 계절을 나눠 쓸 때 생깁니다. 가을·겨울엔 원작, 나머지는 퓨어 식으로요.
다만 125ml짜리 두 병은 다 쓰기 어려운 양입니다. 향수는 개봉 후 1~3년이면 변질되기 시작하니, 처음이라면 하나로 시작하는 걸 권합니다. → 향수 보관법과 유통기한
그리고 — 둘 다 첫 향은 진합니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경고입니다.
두 향수 모두 뿌린 직후가 꽤 진합니다. 저는 그 구간에 머리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향에 예민하다면 둘 다 권하지 않습니다.
비교 대상이 있으면 더 분명해집니다. 제가 함께 쓰는 조말론 콜로뉴와 비교하면, 첫 향의 깨끗함은 조말론이 훨씬 낫습니다. 조말론은 뿌린 직후가 기분 좋은데, 이쪽은 참고 넘겨야 하는 구간입니다.
대신 끝은 존 바바토스가 깊습니다. 조말론은 은은하게 옅어지는 반면, 아티산은 나무 느낌으로 성격이 바뀝니다.
첫 향의 깨끗함 조말론 > 존 바바토스
잔향의 깊이 존 바바토스 > 조말론
존재감·지속력 존 바바토스 > 조말론
“오늘 향수 뿌렸네”라는 말을 듣고 싶다면 존 바바토스이고, 아무도 눈치채지 않기를 원한다면 조말론입니다. 관련 기준은 은은한 향수 고르는 법에 정리해 뒀습니다.
하나만 고른다면 — 퓨어
한 병만 가질 거라면 퓨어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티산 가을·겨울에 맞습니다. 여름엔 첫 향이 더 부담스러워집니다
퓨어 계절을 안 가립니다. 아무 때나 써도 무리가 없습니다
원작이 더 깊긴 한데 쓸 수 있는 시기가 제한됩니다. 한 병으로 사계절을 보내야 한다면 활용도가 높은 쪽이 맞습니다.
원작은 두 번째 병으로 좋습니다. 가을·겨울에 꺼내는 용도라면 우디 잔향이 확실한 강점이 됩니다.
상황별로 나누면
| 상황 | 추천 | 이유 |
|---|---|---|
| 사계절 한 병 | 퓨어 | 계절을 안 가립니다 |
| 가을·겨울 | 아티산 | 우디 잔향이 계절과 맞습니다 |
| 여름 | 퓨어 | 원작은 첫 향이 더 부담스러워집니다 |
| 사무실 | 둘 다 1회만 | 조말론 감각으로 뿌리면 과합니다 |
| “오늘 향수 뿌렸네” 소리를 듣고 싶을 때 | 둘 다 | 존재감이 확실합니다 |
| 첫 향이 중요한 자리 | 둘 다 비추천 | 탑 노트가 두 향수의 약점입니다 |
| 향에 예민한 사람 | 둘 다 비추천 | 첫 향이 진해 머리가 아플 수 있습니다 |
판단 기준은 계절별 향수 선택법과 TPO별 향수 고르기에 정리해 뒀습니다.
이 사례가 말해주는 것
플랭커를 고를 때 적용할 수 있는 교훈입니다.
① 수식어를 믿지 마세요
Pure는 “순수한”이지만 실제로는 “시트러스를 늘리고 꽃을 뺐다”는 뜻이었습니다. Intense, Elixir, Absolu도 마찬가지로 브랜드마다 의미가 다릅니다.
② 노트표를 비교하면 방향이 보입니다
무엇이 추가되고 무엇이 빠졌는지를 보면, 적어도 어느 쪽으로 틀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③ 그래도 결국 맡아봐야 합니다
노트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켜도 체감은 다를 수 있습니다. 원작이 좋았다고 플랭커도 좋으리라 기대하지 마세요. 따로 시향해야 합니다.
④ 소분으로 확인하는 게 가장 쌉니다
둘 다 125ml입니다. 한쪽이 안 맞으면 손실이 큽니다. → 디캔트 완전정리
정리
플랭커는 원작의 “더 진한 버전”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조향사가 만들었는데도 끝나는 지점이 다릅니다. 원작은 우디로, 퓨어는 시트러스로 마무리됩니다.
**Pure는 “더 진하다”가 아니라 “더 단순하고 깨끗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름에 붙은 단어의 의미는 브랜드마다 다르니, 글자만 보고 추측하지 마세요.
하나만 산다면 퓨어를 권합니다. 계절을 안 가려서 활용도가 높습니다. 원작은 가을·겨울용 두 번째 병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두 향수 모두 첫 향으로 판단하면 손해입니다. 매장에서 맡고 바로 고르지는 않았을 향수들입니다. 시향은 최소 30분~1시간 뒤에 판단하세요. → 향수 시향 제대로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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