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쓰면서 가장 많이 나오는 불평은 **“금방 날아간다”**입니다. 그런데 같은 향수를 쓰는데도 사람마다 지속 시간이 크게 다릅니다.
지속력은 향수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고, 쓰는 방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둘을 나눠서 보겠습니다.
먼저: 향수 자체의 한계를 인정하세요
방법을 아무리 잘 써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습니다.
① 향 계열이 상한을 정합니다
| 계열 | 대략적 지속력 |
|---|---|
| 시트러스 | 1~3시간 |
| 아쿠아틱·플로럴 | 3~5시간 |
| 우디 | 5~8시간 |
| 앰버 | 8시간 이상 |
시트러스 향수를 사서 “하루 종일 남게” 만드는 방법은 없습니다. 원료 자체가 가볍고 빨리 휘발하기 때문입니다. 계열별 특성은 향 계열 8가지 정리에 정리했습니다.
② 부향률이 상한을 정합니다
EDT(5~15%)와 EDP(15~20%)는 애초에 농도가 다릅니다. 지속력이 최우선이라면 EDP나 퍼퓸을 고르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자세한 차이는 향수 부향률 완전정리를 보세요.
③ 후각 순응(olfactory adaptation)을 지속력 부족으로 착각합니다
이게 아주 흔한 오해입니다. 자기 향은 20~30분이면 코가 익숙해져서 안 느껴집니다. 향수가 날아간 게 아니라 내 코가 무뎌진 것입니다.
확인법: 옷깃이나 손목을 다른 사람에게 맡아보게 하거나,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다시 맡아보세요. 대개 남아 있습니다.
직접 재본 지속 시간 — 5병
표로만 보면 감이 안 옵니다. 실제로 쓰고 있는 다섯 병의 지속 시간을 적어둡니다.
| 향수 | 부향률 | 계열 | 실측 지속력 |
|---|---|---|---|
| 조말론 블랙베리 앤 베이 | 콜로뉴 | 프루티 | 약 6시간 |
| 조말론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 콜로뉴 | 플로럴 프루티 | 약 6시간 |
| 조말론 우드 세이지 앤 씨 솔트 | 콜로뉴 | 아쿠아틱 | 약 6시간 |
| 존 바바토스 아티산 | EDT | 시트러스 아로마틱 | 6시간보다 김 |
| 존 바바토스 아티산 퓨어 | EDT | 시트러스 | 6시간보다 김 |
여기서 두 가지가 보입니다.
① 조말론 3종은 계열이 달라도 지속력이 같았습니다
프루티, 플로럴 프루티, 아쿠아틱 — 계열이 제각각인데 셋 다 약 6시간이었습니다.
위의 계열별 표를 보면 아쿠아틱이 3~5시간, 프루티가 그보다 짧게 나올 법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같은 브랜드의 같은 농도라서 계열 차이보다 농도 차이가 더 크게 작용한 겁니다.
계열별 지속력 표는 참고치입니다. 브랜드와 농도가 같으면 계열이 달라도 비슷하게 갑니다.
② 같은 “EDT” 표기인데 체급이 달랐습니다
이쪽이 더 중요합니다.
조말론 콜로뉴 약 6시간
존 바바토스 EDT 확실히 더 김
둘 다 “가벼운 농도”로 분류되는데 체감이 한 단계 차이납니다. 조말론 감각으로 존 바바토스를 뿌리면 과합니다.
부향률 표기를 절대적으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같은 EDT라도 브랜드마다 실제 농도가 다르고, 콜로뉴는 EDT보다 또 한 단계 낮습니다. → 향수 부향률 완전정리
그래서 숫자보다 중요한 것
다섯 병을 재보고 나서 생각이 바뀐 게 하나 있습니다.
“몇 시간 가느냐”보다 “어느 구간이 좋으냐”가 중요합니다.
조말론 3종은 6시간 중 앞쪽이 좋고, 존 바바토스 2종은 뒤쪽이 좋습니다. 지속 시간이 길어도 좋은 구간이 짧으면 소용이 없고, 짧아도 그 시간이 좋으면 충분합니다.
실제로 제가 다 쓴 블랙베리 앤 베이는 지속력이 짧은 게 단점이라고 적었는데, 끝까지 쓰고 보니 그래서 질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효과 있는 방법 7가지
1. 보습된 피부에 뿌리세요 — 효과 큼
건조한 피부는 향을 붙잡지 못합니다. 향료가 붙어 있을 유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샤워 후 무향 바디로션이나 바세린을 얇게 바르고, 흡수된 뒤에 뿌리세요. 이것만으로 1~2시간 늘어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가장 비용 대비 효과가 큰 방법입니다.
향이 있는 로션은 향수와 충돌하니 무향을 쓰세요.
2. 샤워 직후, 피부가 아직 따뜻할 때
모공이 열려 있고 수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향이 더 잘 붙습니다. 물기는 수건으로 가볍게 닦되 완전히 말리지는 마세요.
3. 맥박이 뛰는 곳에 뿌리세요
체온이 높은 부위에서 향이 잘 피어오릅니다.
- 손목 안쪽
- 목 옆·뒤
- 귀 뒤
- 팔꿈치 안쪽
- 무릎 뒤 (향이 위로 올라옵니다)
자세한 위치와 분사량은 향수 뿌리는 위치와 올바른 방법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4. 절대 문지르지 마세요 — 효과 큼
손목에 뿌리고 양쪽을 비비는 습관, 많이들 하시는데 가장 큰 손해입니다.
마찰열이 가벼운 탑 노트를 순간적으로 날려버리고, 노트의 전개 순서를 망가뜨립니다. 뿌린 뒤에는 그냥 마르게 두세요.
5. 옷에도 함께 뿌리세요 — 단, 조건부
섬유는 피부보다 향을 오래 붙잡습니다. 코트나 니트에 뿌리면 며칠씩 남기도 합니다.
주의할 점:
- 실크, 가죽, 밝은 색 옷에는 뿌리지 마세요. 알코올이 변색·얼룩을 남깁니다
- 20cm 이상 떨어져서 뿌리세요
- 옷에만 뿌리면 체온이 없어서 향의 전개가 단조로워집니다. 피부 + 옷 조합이 가장 좋습니다
6. 층을 쌓으세요 (레이어링)
같은 라인의 바디워시 → 바디로션 → 향수 순으로 쓰면 향이 겹겹이 쌓여 훨씬 오래 남습니다. 브랜드가 같은 향의 바디 제품을 파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다른 향수끼리 섞는 건 실패 확률이 높으니, 익숙해진 뒤에 시도하세요.
겹쳐 뿌리는 대신 자리를 나누는 방법도 있습니다. 피부와 옷에 서로 다른 향수를 두면 섞이지 않고 각자 남는데, 옷 쪽은 며칠까지 가기 때문에 체감 지속력이 크게 늘어납니다. → 섞지 않고 피부와 옷에 나눠 뿌리는 법
7. 보관을 제대로 하세요
보관이 나쁘면 향수 자체가 변질되어 지속력이 떨어집니다. 욕실에 두는 게 최악입니다. 향수 보관법과 유통기한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효과 없거나 해로운 방법들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지만 권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 방법 | 판정 |
|---|---|
| 바세린을 두껍게 바른 뒤 뿌리기 | 효과는 있지만 끈적임이 심하고 옷이 상합니다 |
| 머리카락에 뿌리기 | 알코올이 모발을 건조하게 만듭니다. 헤어 미스트를 쓰세요 |
| 향수를 냉장고에 보관 | 온도 변화가 오히려 변질을 촉진합니다 |
| 옷장 안에 향수를 뿌려두기 | 향이 뒤섞이고 낭비입니다 |
| 많이 뿌리면 오래 간다 |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주변에 피해를 줍니다 |
마지막 항목이 중요합니다. 지속력을 양으로 해결하려 하면 안 됩니다. 본인은 후각 순응으로 못 느끼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그대로 전달됩니다. 엘리베이터나 대중교통에서 부담을 주는 정도라면 이미 과한 것입니다.
정리
효과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 보습된 피부에 뿌리기 ← 가장 효과적
- 문지르지 않기 ← 안 하는 것만으로 개선
- 맥박점에 뿌리기
- 피부 + 옷 병행
- 같은 라인 바디 제품으로 레이어링
- 샤워 직후 뿌리기
- 제대로 보관하기
그리고 애초에 지속력이 긴 향수를 고르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우디나 앰버 계열의 EDP를 선택하면, 위 방법을 하나도 안 써도 시트러스 EDT보다 오래 남습니다.
이 블로그의 리뷰에는 제품마다 1·3·6·9시간 시점의 실측 기록을 넣습니다. “오래 간다”는 말보다 시간이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