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좀 알아보기 시작하면 이 단어들을 만납니다.
니치(niche)
디자이너(designer)
보통 **“니치가 고급이고 디자이너가 대중적”**이라고 설명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이 설명만 믿으면 비싼 걸 사면 더 좋을 거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저는 두 쪽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조말론(니치 성격)과 존 바바토스(디자이너). 실제로 써보니 우열이 아니라 성격 차이였습니다. 그 얘기를 적습니다.
용어부터 정리하면
| 디자이너 | 니치 | |
|---|---|---|
| 모체 | 패션·화장품 브랜드가 향수도 만듦 | 향수 자체가 본업 |
| 예 | 디올, 샤넬, 베르사체, 존 바바토스 | 딥티크, 르라보, 바이레도, 세르주 루텐 |
| 유통 | 백화점·면세점·온라인 어디서나 | 매장 수가 적음 |
| 가격대 | 5~20만원 | 15~40만원 |
| 생산량 | 큼 | 작음 |
핵심은 “향수가 본업이냐”입니다. 디올은 옷을 만드는 회사가 향수도 내는 것이고, 르라보는 향수를 만들려고 만든 회사입니다.
브랜드 지형 전체는 향수 브랜드 지형도에 정리해 뒀습니다.
조말론은 어느 쪽인가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조말론이 대표적입니다.
향수가 본업 → 니치 성격
에스티로더 소유 → 대기업
백화점 어디에나 있음 → 대중적 유통
이런 브랜드를 “매스티지 니치” 또는 “접근 가능한 니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딥티크, 아틀리에 콜로뉴도 비슷한 위치입니다.
그래서 경계를 외우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라벨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향이 나오느냐입니다. 니치의 전반적인 성격은 니치 향수 입문 가이드에 따로 적었습니다.
실제로 뭐가 다른가 — 네 가지
① 향의 “복잡도”가 아니라 “방향”이 다릅니다
흔한 오해가 **“니치는 복잡하고 디자이너는 단순하다”**는 겁니다. 반만 맞습니다.
제가 쓰는 두 브랜드를 보면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조말론(니치 성격) 단순합니다. 노트 2~3개로 끝나는 구성
존 바바토스(디자이너) 시트러스에서 우디까지 전개가 더 깁니다
조말론은 일부러 단순하게 만듭니다. 레이어링을 전제로 설계된 브랜드라서요. 반대로 존 바바토스 아티산은 탑에서 베이스까지 성격이 완전히 바뀝니다.
복잡도는 브랜드 층이 아니라 기획 의도의 문제입니다.
② 디자이너 쪽이 대체로 더 셉니다
이건 분명했습니다.
| 조말론 콜로뉴 | 존 바바토스 EDT | |
|---|---|---|
| 지속력 | 약 6시간 | 더 김 |
| 확산력 | 약함 | 셈 |
| 양 조절 | 실수해도 사고가 안 남 | 조절 필요 |
이유는 단순합니다. 디자이너 향수는 대중을 상대로 “향수를 뿌렸다는 게 느껴지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조말론 콜로뉴는 농도 자체가 낮습니다.
비싼 쪽이 더 오래간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조말론이 존 바바토스보다 비싼데 지속력은 짧습니다.
③ 첫 향과 잔향의 강점이 갈립니다
제가 다섯 병을 쓰면서 가장 또렷하게 느낀 차이입니다.
첫 향의 깨끗함 조말론 > 존 바바토스
잔향의 깊이 존 바바토스 > 조말론
조말론은 뿌린 직후가 깨끗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존 바바토스는 그 구간이 진해서 솔직히 머리가 아픕니다. 대신 시간이 지나면 나무 느낌으로 성격이 바뀌면서 깊어집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취향의 문제입니다. 판단 기준은 잔향이 좋은 향수 고르는 법에 정리해 뒀습니다.
④ 니치는 “덜 겹칩니다”
이건 니치의 진짜 장점입니다. 생산량과 유통망이 작으니 같은 향을 쓰는 사람을 덜 만납니다.
다만 조말론처럼 유명해진 니치는 이 장점이 사라집니다. 흔한 니치는 흔한 디자이너와 다를 게 없습니다.
가격 차이는 어디서 오나
비싼 니치가 재료값 때문에 비싼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 비용 항목 | 비중 |
|---|---|
| 향료 원가 | 전체 가격의 10% 내외인 경우가 많음 |
| 용기·포장 | 상당한 비중 |
| 마케팅·광고 | 디자이너 쪽에서 특히 큼 |
| 유통 마진 | 백화점 입점 비용 등 |
니치가 비싼 주된 이유는 생산량이 작기 때문입니다. 소량 생산은 단가가 올라갑니다. 여기에 “희소하다”는 포지셔닝이 가격에 반영됩니다.
그래서 가격은 품질의 지표가 아닙니다. 3만원짜리가 20만원짜리보다 본인 취향에 맞을 수 있고, 그건 흔한 일입니다.
어느 쪽을 사야 하나
| 상황 | 추천 |
|---|---|
| 첫 향수 | 디자이너 — 시향이 쉽고 실패 비용이 적습니다 |
| 취향이 잡힌 뒤 | 니치도 괜찮습니다 |
| 사무실·일상 | 어느 쪽이든. 농도가 더 중요합니다 |
| 겹치기 싫음 | 니치 (단, 유명한 건 제외) |
| 선물 | 디자이너 — 교환·구매처가 편합니다 |
첫 향수로 니치를 권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매장이 적어서 시향이 어렵고, 가격이 높아 실패 비용이 큽니다. 취향도 안 잡힌 상태에서 30만원을 거는 건 좋은 순서가 아닙니다.
니치를 사기 전에 꼭 하세요
소분으로 먼저 써보는 것. 니치일수록 이게 중요합니다.
니치 3~5ml 디캔트 5천~2만원
니치 정품 50ml 20~40만원
실패 비용이 수십 배 차이납니다. → 디캔트(소분) 완전정리
그리고 니치는 백화점 시향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매장이 몇 개 없으니까요. 소분이 거의 유일한 현실적 검증 수단입니다.
정리
니치와 디자이너는 등급이 아니라 분류입니다.
니치 향수가 본업 · 소량 생산 · 덜 겹침 · 비쌈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가 만듦 · 대량 생산 · 구하기 쉬움 · 대체로 더 셈
제가 두 쪽을 함께 쓰면서 확인한 건 우열이 아니라 성격 차이였습니다. 조말론은 첫 향이 깨끗하고, 존 바바토스는 잔향이 깊습니다. 비싼 쪽이 더 오래가지도 않았습니다.
가격표가 아니라 본인 코를 믿으세요. 그게 이 글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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